전통 음식 연구가, 통영 거주

이명금
Traditional Food Researcher & Local Resident


10여 년간 사찰 음식을 비롯한 전통 음식을 공부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통영만의 식문화 특색은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사찰 음식은 오신채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오신채란 ‘다섯 가지 매운 채소’를 일컫는데 파와 마늘, 달래와 부추, 흥거를 말합니다. 사찰에서는 이를 대신해 향채로 음식의 맛과 향을 돋우기도 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방앗잎이지요. 신기하게도 통영 식문화와 연결되는 지점이에요. 특히 통영 음식은 갖은양념을 더하기보다 홍합이나 조갯살 등의 천연 조미료를 이용하고 되도록 복잡한 조리 과정을 거치지 않습니다. 사찰 음식과 통영 음식 모두 식재료 고유의 맛과 향을 최대한 이끌어낸다는 점에서 닮아 있다고 할까요?
어린 시절, 으레 먹던 멸치 간장(어간장)이 지금에 와서 보니 재료 본연의 감칠맛만 끌어올리는 역할을 한 셈이었어요. 다양하고 질 좋은 해산물이 통영의 자랑이지만 그 맛을 ‘제대로’ 즐기고자 한 통영의 식문화야말로 진정한 ‘미식’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국이나 나물을 무칠 때에도 어간장(멸치 간장)과 다진 홍합을 넣으시더라고요.
일종의 천연 조미료 역할을 하는 거죠. 통영에서는 예로부터 어간장을 많이 사용했는데 일반 간장에서는 맛볼 수 없는 달착지근한 맛이 납니다. 통영에서는 멸치가 많이 나는데, 생으로 즐기기도 하고 멸치 쌈밥을 해 먹기도 합니다. 멸치젓갈은 흔한 반찬 중 하나인데, 멸치젓이 어느 정도 삭으면 청양고추, 고춧가루를 넣고 버무려 밥과 함께 먹고, 남은 진액은 김치를 담글 때 넣거나 액젓으로 쓰지요. 그리고 그 찌꺼기에 소금을 넣어 다려 만드는 게 멸치 간장, 지금으로 치면 어간장이고요. 멸치의 단백질이 발효되면서 자연히 감칠맛이 더해질 수밖에 없답니다. 소금(나트륨)이 아래에 깔려 염도와는 무관하면서도 은근히 달달한 짠맛이 완성되는 거지요. 통영에서는 고추장을 담글 때에도 메주 대신 간장을 사용했는데, 색깔은 검지만 천천히 발효되고 부패도 되지 않아 유용했답니다. 더운 지방이니만큼 맛과 관리라는 두 가지 측면을 두루 만족시켰던 거지요. 익고 묵고 발효하는 속에서 특유의 감칠맛도 살아났고요. 홍합도 만능 양념입니다. 잘게 다져 나물에 무쳐도 좋고, 특유의 주황색이 식욕을 돋우기도 하고요. 통영은 바닷가 마을이라 술 문화와 떼려야 뗄 수 없는데, 홍합에 함유된 타우린이 숙취 해소에도 큰 도움을 줘 여러모로 기특한 식재료인 셈입니다.


방아전도 그렇고 통영 음식에 된장이 심심치 않게 등장하더라고요.
통영에서는 예로부터 된장을 많이 사용했어요. 토속 음식인 시락국도 된장을 기본으로 끓이지요. 지금은 점차 사라져가고 있지만 된장은 특히 마른 생선의 비린내를 잡아주고 본연의 맛을 끌어올리는 데 효과가 탁월하답니다. 통영은 수산물 집산지이다 보니 워낙 많은 수산물이 잡히는 데다 그걸 다 소화할 수 없어 오래전부터 생선을 말려 한참 동안 즐겨 먹는 문화가 발달한 건데요. 이렇게 말린 생선을 찔 때 된장 푼 물을 사용했답니다. 은은하게 밴 된장 향은 비린내를 잡아주는 동시에 감칠맛을 끌어올려주지요. 그냥 물에 쪘을 때와는 확연히 다른, 한마디로 ‘입에 착 달라붙는’ 생선 본연의 맛을 배가해주는 역할을 하는 거예요.


뚝딱 만들 수 있는 벼락김치도 인상적인데요.
벼락김치는 채소를 끓는 물에 살짝 데쳐 조리하는데, 호방하고 진취적인 통영 문화를 닮아 있지요. 김장 문화가 발달하지 않은 통영에서는 오래 익혀 먹기보다 재료의 신선함을 그대로 즐기거나 익혀도 2~3일 내에 가장 맛있을 때 먹는 게 익숙하니까요. 그때그때 나는 채소를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열무와 고구마 줄기예요. 고구마 줄기도 붉은 순과 푸른 순을 다르게 조리하는데 일반적으로 푸른 건 데쳐서 나물로 먹고, 붉은 건 김치로 담가 먹어요. 소금간을 하지 않아 아삭한 식감을 그대로로 살리고 어간장으로 간을 맞추지요. 되도록 양파 같은 부재료도 넣지 않아요. 다른 재료로 단맛을 더하기보다 식재료 자체의 단맛을 끌어올리는 데 집중하는 거지요. 통영 땅에서 자란 구황 작물은 유독 단맛이 높아 사실 별도의 양념이 필요하지 않답니다.


최근 전통 음식이라 여겨지던 빼떼기죽이나 청각 등이 건강식으로 새롭게 조명받고 있습니다.
어릴 적부터 빼떼기죽을 정말 많이 먹었습니다. 전분이 많아 식어도 흘러내리지 않아서 도시락으로 싸 갈 정도였으니까요. 청각도 마찬가지지요. 동네에서 흔하게 볼 수 있던 식재료로 홍합과 함께 뚝딱 무쳐내면 나물이 되기도 하고, 얼음물을 부으면 냉국이 되기도 했답니다. 제게는 익숙한 식재료지만 어느 순간 통영의 이채로운 먹거리로서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니 저로서는 반가운 마음이에요.
전통 음식은 자칫 고루하게 느껴질 수 있는데, 조목조목 따지고 보면 쉽고 맛있게 즐길 수 있는 방법이 그 안에 숨어 있습니다. 현대적인 조리법을 더해 새롭게 응용해볼 여지도 생기고요. 중요한 건 재료 본연의 맛을 살려 조리하는 데 집중하는 것만큼 요리를 천천히 음미하는 자세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 역시 사찰 음식과도 통하는 부분인데, 결국 우리가 먹는 음식이 우리를 말해주니까요. 조금 수고스럽더라도 더 맛있게, 더 건강하게 즐기는 것. 곱씹어보면 바로 이것이 통영의 식문화를 관통하는 이야기가 아닐까요?